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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
    작성자 : yz

아빠가 나왔다.

토하고 설사하고 화장실을 밤새도록 30번은 들락거린 날.
누우면 토할것 같고 5분도 안되서 화장실을 가고 또 가고
배는아프고 약은없고 어지럽고
아무튼 굉장히 지쳐있었는데
거의 날밤을 까고 나중에는 침대에 앉아서 잤던것 같다.

꿈에.
아빠가 앉아있었다.

처음에는 침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병원인줄 알았는데
잘 보니 매트리스들이 이어져있는 넓은 원형경기장의 벤치같은
카페 벤치였다.
앞앞쪽 줄에 아빠가 앉아있길래
"어! 아부지!! "이러면서
벤치 두줄을 되게 반갑게 뛰어내려가서
아빠 팔짱을 꽉 끼면서 너무 좋아서 헤실헤실 거렸더니
아빠가 팔짱 끼고 있는 내 손등위에 자기 손을 얹어 꽉 잡아줬다.
그리고

"이제 내 아파보인다는 소리, 안하네?"
라고 했다.

한참 들깨털이 노예 하던 그 때처럼 체격도 좋고 힘도 펄펄 한데
아파보인다는건 또 뭐여 어디가 아프다는건데 ?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아빠 팔뚝에 매달려서 부비작 거리고 애교를 부렸다.

그러다가 잠을 깼다.

근데 순간
아. 아빠가 지금은 얼굴이 어떻더라.? 하고 멍하니 생각하는 내가 있더라.

아빠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데

어느때의 얼굴을 말하는건지.
사실
냉동실에 있다 나와서
하얗기도 하고 파란 기운마저 돌던 그날을 기억한다.
염을 하기 전
이제 마지막이라고.
거기 일하는 아저씨가 아빠 손도 잡아주고, 얼굴도 만져주세요.
좋은데 가라고 열심히 기도해주세요
했던 그날.
복수가 차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호흡이 힘들어서 턱이 반쯤 벌어져있던 입 안에 가득차있던 솜을 아직도 기억한다.
근데
그건 그거고
영양에 새로 지었던 번듯한 2층짜리 주택앞
너른 마당에서
엄마가 과하게 농사지어서 사과일도 못하게 방해했던 들깨 털던날
불만은 많지만 일단 해야하는 일은 묵묵하게 일하던
아빠가 생각났다.
그런 얼굴만 기억난다.

건강하고
허허 하고 웃어주던
무표정한듯하면서도
속으로는 장난꾸러기라서 틈만 나면 개구진 짓을 많이 했다.
엄마가 일부러 다리를 밟고 지나가면
허- 참! 이러면서 약간 짜증 부렸던 그런 말투도그렇고

사과박스 그 뭐라고
갯수 딱 맞춰서 차에서 싣고 가서
어느 한 모서리 비는 곳 없이 길에 박스쌓기 해서
정확하게 직사각형 을 만들었떤날
신나서 우리끼리 사진 찍고 난리도 아니었고.

엄마가 다리를 다쳐서 사과농장 일을 못할때 그때
내가 막 병원 그만두고 일이 없을때라서
영양에 올라가서 아빠랑 같이 일하고
매일매일 대구 올라가서 사과 공판장에 내려놓고
대구에서 저녁 먹고 내려오고 그랬었다.
다른건 모르겠지만 먹고싶은거라도 실컷 먹으라고
매일 맛있는거, 맛집만 찾아다니는 거 나랑 같이 놀아줬다.
사실
일했던거 돈 적게 준거
식비 제하면 그정도만 주는게 맞긴하다.
여하튼 그 달에는 식비로 돈을 참 많이 썼다고 했다.
나중에 엄마가 불만불만이었으니깐.

.

아빠랑은 해보고싶은것도 많고 해봤던것도 많았다.
병원 그만둘때쯤에는 한참 히스테릭해서
이름만 불러도 화를 낼 정도였는데
그래도
아무 죄도 없는 애기들인데
그냥 이유없이 화가 치밀어서 갓난쟁이 애를 막 주먹으로 패고 싶고
여하튼 그런 나쁜 마음이 들어서
도저히 일을 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까
엄마도 아빠도
수긍하고
그럼 좀 쉬어라고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냥 아빠는 늘 내편이었따.
잔소리도 없이
아빠가 퇴임식 하기 전 어느때였던것 같다.
퇴임식 하기 전에 은아 니가 결혼이라도 하면
축의금 여기저기 주변에 뿌려놨던거 조금이라도 돌려받을수 있을건데
라고 하면서
엄마가 나한테 계속 너 주변에 남자 없냐고 묻고
선자리를 알아보고, 주변에 이래저래 다 들쑤시고 한참 그랬었다.

그때쯤에 아빠가 나한테
너거 엄마 오늘 계하러 갔는데, 오늘 저녁먹고 집에 들어갈까 ? 라고 하셔서
내가 병원 마치고나서 온천장으로 갔었던적이 있다.
공무원들이 접대 한다고 가던 가게가 있다면서 거기 낮에는 조용하니까 거기 가자 하면서.
온천장에 있는 오겹살집이었다.
아빠가 이 집 안마신 술병 막 갖다넣고 결제 많이 올리고 그랬던적 있다고 썰 풀기도 하고.
아무튼.
그날 그냥 괜히 지레 내가 찔려서
"아부지. 내, 결혼 좀 늦게해도 되나? 꼭 일찍해야되나?? 아직 그렇게 급하게 결혼을 할만한 사람이 없다."
라고 했을때에도
아빠는
"누가 뭐라 했나-? 천천히, 상황이 될때 하면 되는거지" 라고 했었다.
그러면 또 내가
"아니 아빠는 그런거 이래라저래라 안하는데~ 엄마가 계속 눈치주니깐.. 그렇지"
라고 하고.
늘 아빠는 중립이었다.
안되는 일을 억지로 보채지도 않고 딱 적당한 정도에서 타협을 하는.

물론 엄마나 언니나 내 동생과는 일단 혈액형부터가 맞지가 않다.
생각을 차분히 해보지 않고 일단 말로 들쑤셔놓고 행동부터 나가시는 분들이라서...
그냥 아부지랑 나는
혈액형이랑 생각하는 사고방식 같은게 좀 닮았던거 같다.
고집불통이고 뭐 이런 나쁜거 말고.
그냥
내가 한 30년 더 살면 아빠처럼 생각할텐데
내가 지금 당면한 이런 과제들에 대해서 아빠한테 물으면 아빠는 늘 정답을 알려줬었다.

학교에 들어올때도... 학교를 다닐까말까 고민했었다.
돈 모아놓은것은 없고
빚은 계속 갚고있던 중이었고
병원 일을 당장 그만두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매달 갚아나가야하는 돈들이 워낙 많았어서
근데
학교는 너무 가고싶고.
게다가
붙었었고.
그니까 너무 초조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병원일을 그만두고싶은 핑계중에
사람들에게 가장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적당한 이유로 도망칠수 있는게
대학이었다.
8년이상 일한 직장을 쉽게 그만둘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그 이후에 2월까지만이라도 좀 견뎠으면
자연스럽게 병원이 폐업신고 하는 흐름을 타서
나도 실업급여 신청을 할 수 있었을테고....
그랬으면
1학년 초반에 돈이 없어서 물건을 팔고 이사를 하고
더 싼집으로 더 싼거. 안먹고 안쓰고...
그렇게 참 힘들게도 살았다.

아빠가 그때 한참 고민하던 나한테 그랬다.
일단 눈앞에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가면
언젠가는 다 풀어지지 않겠느냐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눈앞에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라고 했었다.

못미더운 딸인데
돈관리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못해내고
탄탄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그냥 죄송했다.
아빠 임종할때
앞으로 잘사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라고 하면서도
이제까지 이렇게 못나게 살아서 죄송해요
그런말도 했고

그래도 할말은 다 했었다.
아빠
사랑한다고
진짜 너무 사랑한다고
감사합니다

너무 추억이 많아서
언니나 동생이 겪어보지도 못한 것들을
서로 공유한다는게
뭔지
아마 언니나 동생은 모를거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똑같이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는거
그런 사람이
내가 궁금한게 생길때마다 현자처럼 답을 주는 상황이라는게.
유머감각이 있어서
뜬금없는데에서 웃음보 터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외계인이나 UFO나 헬리혜성같은거에 심취하고.
장윤정 노래 좋아하고
퇴근하고 나서 저녁시간에는 장농에 기대 앉아
핸드폰에 저장된 소설을 보는게 아빠 취미였다.
사과 농원에서 가지자르고 꽃눈 자르고 하는 가위를 하도 오래 쥐고 있어서
엄지손가락에 트리거관절이 와서
손가락이 약간 틀어지기도 했고
평생 평발이나 무좀으로 고생도 많이했고.

.

아무튼....
그날 잠에서 깨어나보니
몽중한에
지금 아빠 얼굴이 어떻더라 하고 떠올리려는데
한참 아파서 수척했던 얼굴말고
건강했을때 얼굴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벌써
몇달전에 돌아가셨는데
그것조차 까먹어버릴만큼 시간이 지난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내 양 손을 꽉 붙잡고 자고 있더라.
아빠가 꽉 잡아주는 줄 알았는데
내 손등을 덮은 커다랗고 두툼한 손 느낌이 아직도 든다.

보고싶고.
사랑해요 아빠

죽고 나서 일 맡았다고 거기서도 앞으로 바쁠것 같다고
고모 꿈에 나와서
출근한다고 일 생겼다고 좋아했다하길래
내가
아빠는 죽어서까지 일을 하느냐고, 그냥 커피나 마시고 좀 쉬면 안되나 하고
푸념했던적이 있었는데
내 꿈에는 아빠가 좋은 옷 입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내 손을 꽉 잡아주고
이제 나 아파보인다는 소리, 안하네? 라고 다정하게 물어오고.
정말 괜찮은거겠지
좋은데서 잘 지내고 계신거겠지. 위안을 삼아본다.

우리 식구들 특유의 농담으로
즐거우면서도 너무나 슬프게 임종을 맞이했던것 같은데
그게 벌써 2020년 7월이었고 지금은 2021년 3월이니까
벌써 8개월이나 흘렀네
그래도 보고싶어요 아빠.
다른 딸들보다는 내가 아빠를 제일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아빠 모시고 앰뷸런스로 6시간
정신없이 내려오면서 휴게소 잠깐 들러서 병원직원 아저씨 잠깐 차에서 내렸을때
아빠. 내가 장윤정 노래 틀어줬잖아요.
우리 맨날 대구에 공판장 납품하러 갈때
가는길 두시간 오는 길 두시간 CD바꿔가면서 내내 장윤정 노래만 들었잖아.
내가 흥얼거리든 뭘 어쩌든 신경안쓰고
아빠는 운전만 하긴 했지만
난 그것도 우리끼리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니가 농장을 이어서 했으면 좋겠다고.
누구라도 좋으니까.
이만큼 일궈놨는데 이제와서 그만할수는 없다.
농업대학을 가서 전액장학금 생활비 받으면서 공부를 하는게 어떠냐고
동생에게 권유할수도 없고, 언니에게 권유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가끔은 싸울때도 있었지만.
잠깐 침묵하면 또 잠잠해져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즐겁고 슬픈 임종.
그땐 그랬었다.
앞으로도 세월은 많이 흐를테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시간들이
또 어느순간에는
엄마가 돌아가실테고
그럼 정말로 나 혼자 남겠지
지금은 내가 38세, 엄마가 68세인데
엄마가 많이 사셔도 10년, 20년이 아닐까...
악착같은 끈기로 지금 상황을 버텨내고 있는 엄마도 대단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한번도 잘 살았던 적도 없고
늘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망하고.
형제들이 있고, 내가 믿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어도
안으로 곪아들어가는 이런 부분들을
과연 내가 잘 붙잡고 있을수 있을까
가끔 엄마를 보고 있자면

나만 보면 물고 빨고
볼을 깨물고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가서 부비작거리고
나는 늘 엄마가 고픈데
누가 날 좀 안아줬으면 좋겠고

눈물 그렁하게
공허한 마음인데
내가 내 새끼를 낳는다고 해도
이마만큼 이뻐해줄수 있을까 싶을만큼.
근데
엄마까지 없는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르고
붙잡을 수 없는것도 너무 많고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미완의 상태로
그저 시간만 흐르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내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된다.

혼란스럽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산다는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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